반응형

 

전에 쓴 글 최근동향 보강해서 재업함. 




1. 중국 주석은 마오저뚱-화궤평-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순으로 총 6명이 있었지만, 마오저뚱-덩샤오핑-시진핑 3명으로 압축할 수 있음. 

 

 

 

2. 마오저뚱이 중국대륙을 완전히 먹었지만, 투쟁만 하던 사람이라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음. 대약진운동이라는 뻘짓을 하게 됨. 

 

 

 

3. 마오저뚱이 참새를 곡식을 훔쳐가는 해로운 새라고 함.  공산당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참새를 거의 전멸시킴. 참새가 사라지자 참새가 해충들을 잡아먹지 못해 병충해가 크게 발생해서 농사가 맛이 감.  

 

 

 

4. 마오저뚱이 철 생산량에서 영국을 뛰어 넘으라는 지시를 함. 당은 목표달성을 위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농기구까지 녹여 쓸모없는 철괴를 만듬. 철 생산량은 영국을 뛰어넘었지만 잘 사용하던 농기구가 쓸모없는 철덩어리가 됨. 

 

 

 

5. 이런 뻘짓이 누적되어 결국 3천만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이 옴.  

마오저뚱의  권위는 살아 있었지만 정책에 대한 의심이 대중들간에 생기기 시작함. 

 

 

 

6. 마오저뚱이 자기고향 후난성 출신인 화궈핑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디짐.  

 

 

 

7. 화궈핑은 “양개범시”를 정치구호로 내세움. 두가지는 무조건 옳다라는 뜻으로 마오저뚱이 결정한 것과 지시한 것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임.


8. 죽은 마오저뚱의 권위에 기대서 힘을 모으려 한 것이었음. 

 

 

 

9. 하지만, 화귀핑은 혁명경험이 없는 신참이었음.


10. 대장정,국공내전,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혁명원로들 사이에서 화귀핑은 존재감 없는 어린 철부지 취급을 당함. 

 

 

 

11. 이때 덩샤오핑이 다른 정치구호를 들고나옴.


12. “실사구시”였음.


13. 마오저뚱은 대체로 옳지만, 그의 말중 돈이 되는것만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뜻임.  마오저뚱의 권위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개혁개방을 암시하는 구호였음. 

 

 

14. 마오저뚱의 뻘짓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과 당원들은 등샤오핑의 실사구시에 열광을 함.  


15. 1978년 12월 22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등샤오핑이 권력을 이어받게 됨. 

 

 

16. 집권후 등샤오핑은 세가지 방향을 제시함.


17. 선부론과 도강양회, 집단지도체제임.  

 

 

 

18. 선부론,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들이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결국 전체가 다 잘 살것이라는 이론임.  


19.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자는 말이었고 이 이론에 따라 상하이등 해안도시들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함.


20. 내륙지역은 발전에서 소외되어 양극화가 시작됨. 

 

 

 

21. 두번째 지시가 도광양회를 100년간 하라는 것임.


22. 등샤오핑이 주석이 되던 시기는 형제 공산국가인 소련이 맛이 가고, 미국이 세계의 원탑이 되는 때 였음.  


23. 도강양회,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르라는 뜻으로 미국, 일본등 자본주의 나라와 수교해서 그들의 자본과 기술로 성장하려는 전략이었음. 

 

 

24. 세번째 지시가 정치영역으로 집단지도체제를 만듬.


25. 7명으로 이루어진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합의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임.


26.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상무위원회에서 반드시 합의를 거치게 해서 권력을 7명으로 분산시킨다는 것임. 

 

 

27.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선부론은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을 가져옴.  

 

 

28. 10년동안 중국 GDP를 1조6천억불에서 8조5천억불까지 끌어올려 성장만 놓고보면 대박을 침. 

 

 

29.자원 및 역량을 해안도시에 집중하는 선부론을 실행하는데는 위험성이 하나 있었음. 

30. 돈이 필요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안에 미국의 하렘과 같은 빈민구역이 생기고 커져 ,  사회에 불만을 가진 빈민세력이 생기는 것이었음. 

31.  마오저뚱이 만든 호구제가 보완책이 됨.  

32. 중국은 전 국민을 농민과 시민으로 나누고,  시민을 다시 거주지역에 따라  등급으로 나눔. 

 

 



33. 인구 천만이상 도시에 사는 시민은 1등급,  5백만~1천만은 2등급,  3백만~5백만은 3등급 식으로 등급을 나눔. 

34.  이것을 호구제도라고 하며, 도시 호구를 가진 사람은 도시에 농촌호구를 가진 사람은 농촌에만 살아야 함. 

35. 도시 호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위 등급 도시 호구를 가질수가 없음.   

36. 2등급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2등급이나, 하위 3등급,  최하위 농민 호구를 가질수는 있지만, 상위등급인  1등급 도시의 호구를 가질수 없다는 말임.  

 

 

37. 물론 농민이 도시로 간다거나,  자기 등급보다 상위 등급의 도시로 마음대로 간다고 해도, 구속되거나 벌금이 나오는것은 아님. 

38. 사회보장이 끊김. 

39. 사회보장이 끊긴다는 것은  자녀가  교육을 받으려고 학교를 갈수도 없고, 자동차나 집을 살수도 없다는 말임. 

 

 

40. 돈은 벌려면 도시로 가야 하는데,  가족이 이주하면 호구때문에 자식교육이 안되니, 보통 가족들은 현지에 남겨두고 돈을 버는 사람만 도시로 넘어옴. 

41. 이들을 농민공이라고 부름.  

42. 호구제도의 끝판왕은 베이징임 

 

 

43. 베이징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베이징 호구를 받으려면 800만위안(15억원)이상 베이징에 투자를 하든지, 부부중 한명이 베이징 호구가 있든지, 베이징에서 대학교를 나온후 군대를 가야 함 

 

 

44. 이러다보니, 베이징 호구가 있는 남자는 지방에서 인기가 장난이 아니게 됨. 지방 여자가 베이징 남자를 물어 결혼하면 여자도 베이징 호구를 가질 수 있게 되니 그런것임.  

 

 

 

45. 지방 대도시도 베이징 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임 

 

 

 

46. 2020년 4월 중국정부는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호구를 옮길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함. 

 

 

47. 물론 아무나 호구이동을 해주겠다는 것은 아님 

48.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서 일정 포인트가 쌓이면 도시 호구를 얻을 수 있는자격을 주겠다는 것임.


49. 거주기간 만으로 포인트를 채울수 없고, 해외유학자, 대졸 취업자, 45세 이하 이공계 고졸 취업자 정도가 되어야 가점을 받아 도시호구를 받을 수 있는 수준임. 더구나,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특급지역으로 호구이동 대상에서 아예 빠짐. 

 

 

50. 많이 배우거나, 제대로된 직장이 있는 사람만 호구이동을 해주겠다는 것이니,  편돌이나 노가다 김씨등은 아무리 도시에 오래 살아도 호구 이동이 안된다는 말임 

 

 

51.  호구제도 완화는  이유가 있었음 

 

 

 

51. 중국 부동산 경기가 ㅆㅊ이 나고 있어 그럼

 

 

 

52.  지금까지 중국경기는 중앙정부가 돈을 풀어서 전국에 고속철을 깔고, 도로를 만들었고, 지방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하면서 버텨옴 

 

 

53. 이제 중국내의 고속철도나 도로는 깔만큼 깔아버림. 

 

 

54. 일대일로를 하며 해외에 철도,도로,항만등을 만들고, 지방도시에 지하철을 깔기 시작하면서 어느정도 SOC땜빵을 시작했지만, 부동산이 문제임

 


55. 만들기는 하는데, 비어있는 주택이 5천만호에 이르게 됨. 


56. 도시에서 돈을 벌고있는 농민공들에게 도시호구를 주면 부동산을 살수있는 자격이 생김. 


57. 2억8천만명 정도인 농민공들중 상위 5천만명에게 도시 호구를 줘서, 
지방도시에 텅텅 비어있는 부동산을 이들이 살 수 있게 해줘 부동산 경기를 유지 하려는 것임.  

 

 

57. 호구제도 개정은 했지만, 생각보다 자격요건이 까다로와 도시 호구를 얻는 농민공들이 많지 않았고, 코로나등으로 소득이 떨어져 지방도시라고해도 집을 살만큼 수입이 있는 농민공들이 많지 않았음.


58. 헝다 그룹 사태가 시작된 원인임.

59. 호구제도가 문제가 많은 제도로 보이지만,  도입 초기에는 괜찮았음.

​​

 

60. 마오저뚱 시기에 3천만명씩 굶어죽던 절대빈곤 농민들은 집단농장이 해체되고 자유농업을 하면서 어느정도 재산을 가질수 있었고, 일부는 도시로 넘어가 농민공으로 불리며 돈을 벌게 됨. 

 

 

61.  2억8천만명의 농민공들이 번 돈을 고향에 송금하면서 중국 전역에 돈이 돌기 시작하고 절대빈곤이 조금씩 나아지게 됨. 

 

 

 

62. 농민들은 조금씩 좋아졌지만 대박은 딴 사람들이 치게 됨.

63. 덩샤오핑의 선부론에 따라 정부가 독점하던 부가 동부해안지대의 민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고위당원과 그들과 꽌시(인맥,연줄)로 연결된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먹을거리가 생기게 됨. 

 

 

 

64.  마오저뚱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천안문사태로 정치적 자유에 의한 시민으로서 권리획득도 멀어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엄청난 돈이 터지게 되자 사람들은 돈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함. 

 

 

 

65. 덩샤오핑의 선부론은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돈이 최고라는 새로운 계시가 되었고, 인민들은 이 계시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임. 

 

 

 

66. 엄청난 규모로 쏟아지는 돈 벌 기회, 돈 벌 기회를 통제하는 당의 특권, 중국 인민의 돈에 대한 욕심이 결합되자 규칙,상식,윤리가 실중된 수억명의 사람들이 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함. 

 

 

 

67.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안하는 놈이 바보가 되고, 사업가들도 당에 연줄을 만들어 부패에 가담하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은 사회가 됨. 

 

 

 

68. 덩샤오핑의 선부론이 종이,화약을 개발한 중국인의 창의성과 만나자 짝퉁으로 만개를 하게 됨.  

69. 자살하려고 농약을 마셨는데 농약이 가짜라서 살아나는 사회가 되버림.


70. 믿을것은 점점 사라져 가고, 돈,부동산 같은 실물만이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커져감. 

 

 

71. 중국은 돈을 위해 환경을 엄청난 속도로 파괴함.

72. 하천은 폐수가 되고, 도시는 스모그로 낮에도 불을 켜야 함.

73. 중국인의 사고로 보면 돈은 내가 가져가는 것이고 환경은 다 같이 분담하는 것이니 돈이 먼저다임.

74. 선부론이 중국경제를 급성장 시켰지만, 중국인의 DNA에 있는 이기주의적인 돈벌레 마인드를 깨워버림. 

 

 

75. 등샤오핑이 선부론만 이야기 한것은아님. 

76. 선부론으로 돈을 벌고 나면, 그 다음 단계가 공동부유라고 이야기 함. 

77. 요즘 시진핑이 공동부유를 노래부르는 것은  몇십년전부터 진행되어 온 경제 발전계획이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말임. 

78.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세가지로 요약한 공동부유는 다음과 같음. 

   1) 열심히일하는 자에게 더 많은 부를 준다.   2.)부의 편중을 방지한다.  3)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 

79.  1번과 2번은 맞고 당연한 공자님 말이지만, 빨리 실현되기 힘든 사안이라  3번이 우선 강력하게 실행되기 시작함. 

80. 시진핑이 공동부유를 강조한 바로 그 다음날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한국돈 18조원에 해당하는 천억위안을 기부금으로 내놓기로 각각 발표하였고, 다른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가 시작됨. 

81. 자본주의식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 고소득을 올리는 IT업계나, 연예계 등 종사자들이  농민공을 비롯한 노동자층에 대해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하니 부의재분배를 시행하겠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작동하기 시작한것임.

82. 당장은 돈을 많이 벌어 눈꼴 사납던 부자들을 잡아족쳐 인민들의 환호를 받겠지만,  돈을 벌어봐야 나중에 기부금 명목으로 다 뺐긴다는 결말은 기업인들이 전처럼 목숨을 걸고 돈을 벌기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번 돈을 빼돌리는 실력만 올려줄 것인지 의문인 상황이 됨.

83. 시진핑은 내년 5년임기의 3연임을 시작함.

84.  2연임, 즉 10년만 해먹고 주석직을 내려놓는, 등샤오핑 부터 짜놓은 후계구도를 처음 깨트리며 3연임을 시도하는 만큼 시진핑은 인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실적이 필요한 시기임.


85. 미국과 분쟁으로 경제가 맛이 가기 시작하는 시기에 ,공동부유까지 성공하지 못해 인민들이 불만이 높아지면,  대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임. 











한줄요약.   시진핑이 5년을 더  해먹기 위해 무리를 하는것 같음.   공동부유한다고 기업인들 족쳐서 기부금 삥뜯는중. 

반응형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21. 10. 18. 23:37
반응형



이릴적 여자와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한 하라보지가 있다.


바로 주식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렛버핏찡.




이 하라보지는 어릴적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아서 동네를 돌며 코카콜라, 껌, 잡지 등을 팔고 신문배달도 했다.


이렇게 번 돈은 복리라는 개념에 의해 키워지게 되는데...




경제나 재테크에 대해 배울때 항상 듣는 단어가 있다.  바로 복리!


이 복리라는것의 힘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을 것 이다.


왕이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한 청년이 체스칸을 밀알로 채워달라고 말하고 왕은 파산했다는 이야기.


팩트롭 어느정도의 돈이 들어가는지 계산을 해보자.


 64칸의 체스판에 첫칸에 한알 그리고 각칸마다 2배의 밀알을 올려놓을 경우 체스판에는 2^64 - 1 개의 밀알이 올라간다.


2^64 - 1 = 18,446,744,073,709,551,615 = 1844경 6744조 737억 955만 1615 개의 밀알


무게의 단위 1파운드의 유래가 밀알 7680개의 무게임을 감안하면 2840조 9198억 126만 4264 파운드


1톤 = 약 2204 파운드 이므로 1조 898억 27만 2805톤, 2019년 03월 기준 국제 밀 시세는 240달러/톤


체스판에 올라간 밀의 가격은 261조 5520억 654만 3200 달러가 된다.




즉 복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개념이다.


이런 복리의 힘은 이야기속의 밀알에서만 보여지는게 아니다.




워렌버핏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회사다. (방송기준)




현재기준 세계 시가총액 5위에 랭크된 회사가 버크셔 해서웨이다. (그 와중에 천조국 머단하다.)


버크셔가 특히 대단한건 1위 아마존부터 8위 텐센트까지 버크셔를 제외한 모든회사가 IT 기업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버크셔는 IT라는 시대의 흐름과 거품이 아닌 순수한 투자만으로 세계 5위의 기업이 되었을까?




워렌버핏의 아버지 하워드버핏은 주식중개인이었지만 버핏이 태어난지 1년만에 대공황여파로 짤린다.




하지만 이후 여러 사업을 하며 성공한 하워드버핏은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아버지의 당선에 의해 졸지에 12세의 나이에 워싱턴으로 이사가게된 워렌버핏은 친구를 모두 잃고 학업에 마저 흥미를 잃는다.




그리고 선생님을 괴롭히는 일찐스러운 취미를 갖게 되는데 그 취미란..




당시 워렌의 학교 교사들이 많이 보유한 AT&T (현재 미국의 최대 통신사) 주식을 공매도한 뒤




교사들에게 자신의 거래기록을 보여준것... 급식때부터 싹수가 노오랗다.




그렇게 어린나이에 주식투자로 학교선생들의 소득보다 많은 돈을 벌던 워렌버핏은 대학진학을 원치 않았지만


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여 3년만에 졸업해버리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보았는데




탈락해버렸다....




하지만 워렌버핏은 탈락한 하버드 대신 자신이 읽은 주식투자에 관한 책의 저자인


벤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가 교수로 재직중인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들어간다.



동전을 던져 투자하는 것과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투자하는 것이 차이가 없다는 벤 그레이엄의 강의를 들으며


워렌버핏은 한가지 투자관을 정립하게 된다.


 




바로 잃지 않는것!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기본인 투자에서 돈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盧?




그 스승의 그 제자 답게 워렌버핏의 스승 벤그레이엄은 가치투자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재무제표


가치투자란 기업의 재무제표 (재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적은 보고서라고 보면 된다.) 를 바탕으로


투자한다면 주가는 제 가치를 증명해준다는 기업의 가치에 기반한 투자방법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식 세일즈를 하는 워렌버핏은




벤 그레이엄에게 영향을 받아 가치투자에 집중하던 와중에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영향으로 워렌버핏은 서서히 변하게 되는데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것에 공포심이 있던 워렌버핏은




데일 카네기 코스라는 연설하는 법에 대한 수업을 듣고 그를 극복했으며


(실제로 워렌버핏의 사무실에는 모든 학위를 제치고 데일 카네기 코스 수료증만이 걸려있다.)




이를 바탕으로 멋지게 청혼하여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11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하며 일벌레로 살던 워렌버핏은




소형주 위주의 투자를 했는데 버려질 회사 중 단기적으로 주가상승의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투자를 했는데


이를 한모금 빨 수 있는 버려진 꽁초 줍기라고 표현했다.




105,100 달러로 시작한 첫번째 투자조합은




700만 달러 즉 66.66배의 수익을 거두게 되고




세명의 자녀까지 낳게 된다. (태어나보니 애비가 워렌버핏 ㅆㅅㅌㅊ)




그렇게 돈도 잘벌고 내조도 잘받는 워렌버핏은 공화당 셩향의 정치관을 갖고 있었지만


마누라에의해 민주당의 성향으로 변하게 된다.




워렌버핏이 돈을 벌어오면 마누라는 재단을 설립, 운영하며 사회를 위해 돈을 썻다.


하지만 워렌버핏은 재단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는 돈을 버는데 재능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잘하는것, 재능있는것에 집중하는 워렌버핏의 행동은 투자스타일에서도 나타나는데




주식시장에 존재하는 수천개의 기업을 모두 잘 알 필요 없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회사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것이 그것이다.


이 뜻은 삼성전자와 같이 유명한 회사에만 투자하라는것이 아닌 어떤 회사든 회사의 내부자만큼 잘 아는회사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투자하며 승승장구하던 워렌버핏은 1962년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가치투자의 기본 재무제표 대비 주가가 싸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상황이 좋지 않아 공장등의 자산을 처분하며


자본금을 축적하며 자사주매입을 하던 상황이었고 이를 노린 워렌버핏은 버크셔의 주식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버크셔의 주식을 갖고 있던 워렌버핏에게 버크셔 경영진의 연락이 왔다.


경영진은 워렌버핏에게 보유주식의 희망 매도가격을 제시하라고 이야기했고 


워렌버핏은 주당 11.50 달러를 제시하게 되고 경영진은 OK 라는 뜻을 내비추게 된다.




하지만 얼마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진들은 주당 11.375 달러의 가격으로 자사주의 공개매수를 발표했는데




자신과의 합의를 무효화하고 통수친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진에게 빡친 워렌버핏은 오히려 주식을 추가매수하게 된다.




홍어는 어디에나 있다.




결국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충분히 모은 워렌버핏은 회사를 지배하고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를 180도 다른 회사로 만들게 되는데  이 회사가 바로 현재의 버크셔 해서웨이인 그 회사다.


  


만약 경영진이 주당 12.5센트를 깍지 않고 워렌버핏의 주식을 사주었다면 현재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버크셔의 인수는 매우 감정적인 이유에서 진행된 일이지만




원래 투자를 할때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주갤럼은 주식에 감정을 갖고 투자하지만 주식은 주갤럼에게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워렌버핏은 자신이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버크셔의 인수는 아버지를 사망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뒤돌아본 이유에서인지




탈탈 털린 워렌버핏의 정치관은 다시 한번 털리게 되고 이는 곧 워렌버핏의 투자관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 1부 끝 -



반응형
by 밑바닥에서 글로벌로~ 발전소장 에르 :) 2019. 3. 22. 22:31
| 1 |